• 2022. 5. 24.

    by. pellen

    이탈리아 사람에게 이탈리아 요리에 관해 물으면, 그가 어느 지역 출신인지에 따라 볼로냐, 베네치아, 로마, 밀라노, 또는 토스카나, 피에몬테, 시칠리아, 나폴리 요리에 관한 대화를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탈리아' 요리를 단일한 요리법으로 설명할 길은 없다. 이탈리아 요리라 할 때 ‘이탈리아'는 지금의 이탈리아보다 훨씬 역사가 긴 지역을 말한다. 1861년까지 군주의 지배를 받은 이 지역들은 대개 서로가 적이었고, 공유하는 문화적 전통이 아주 적었다 공통의 언어는커녕 -2차 세계대전 이후에야 인구 대부분이 일상 언어로 이탈리아어를 쓰기 시작했다 一 요리 방식도 완전히 달랐다. 요리에서 해산물의 비중이 큰 베네치아와 나폴리의 요리법을 예로 들어보자. 베네치아사람과 나폴리 사람이 각자 고향 사투리로 대화한들 서로 이해할 수 없듯이 요리도 마찬가지다. 

    어떤 요리는 손재주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베네 치아의 절제된 레퍼토리는 나폴리의 식탁 위에서 특별하며, 나폴리의 강렬하고 격정적인 맛은 베네치아 사람에겐 이국적으로 느껴진다. 720km나 떨어져 있는 베네치아와 나폴리의 차이는 고작100km 떨어진 볼로냐와 피렌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에밀리아-로마냐주의 중심지 볼로냐와 토스카나주의 중심지 피렌체라는 두 도시의 경계를 건너는 순간 동전의 양면처럼 요리 방식의 모든 면이 뒤집힌다. 볼로냐 주방의 풍요로움은 값비싼 재료를 풍성하고 아낌없이 쓰는 요리, 즉 받아들일 수 있는 모든 질감과 풍미의 대비를 끊임없이 탐험하는 완전히 바로크적인 것에서 비롯된다.

    반면에 영리하고 조심 그대로에 바탕을 두고 같은 피렌체 요리는 모든 것을 신중하게 계산하며, 본질에 집중함으로써 단순한 조화를 이룬다. 볼로냐는 송아지고기의 속을 육즙이 풍부한 파르마 햄으로 채운 후 겉은 숙성된 파르메산을 입혀 버터에 튀기듯 익히고, 얇게 저 민 흰 송로버섯으로 호화롭게 감싼다. 피렌체는 호방한 크기의 티본스테이크에 올리브유의 향과 간 후추 외에는 아무것도 더하지 않고 숯이 타오르는 장작 잎 위에서 재빨리 구워낸다. 

    지역에 따라 음식이 이렇게까지 달라지는 것은 이탈리아가 뚜렷이 바로 산과 바다로 나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지중해와 아드리아해에 단단히 발을 딛고 있는 긴 장화처럼 생긴 반도다. 그러면서 유럽 대륙에서 가장 높은 산맥인 알프스의 사슬에 매달려 있는 땅이다. 아드리아해 서쪽에 위치한 베네치아에서 롬바르디아주를 거쳐 피에몬테주에 이르기까지 이탈리아의 주요 평지가 알프스 기슭을 따라 펼쳐진다. 낙농업이 발달한 이들 지역에서는 요리 기름으로 버터를 쓰고, 리소토의 재료인 쌀과 폴렌타의 재료인 옥수수가 많이 난다. 북부가 산업화한 후 남부 출신 노동자들이 북부로 유입되고 나서야 스파게티와 기타 공장제 파스타가 밀라노와 토리노의 식탁에 등장했다. 평야는 서쪽을 따라 이어지다가 이탈리아의 거대 산맥인 아펜니노에 가로막혀 지중해 해변에 다다르지 못하고 끊어진다 아펜니노산맥은 짐승의 척추처럼 북에서 남으로길게 뻗어 가운데는 척박한 석산이 솟아 있다.

    꼭대기와 산 등성이 사이사이를 잇는 현대식 도로가 나기까지 셀 수 없이 많은 계곡이 지상 낙원으로 남아있었고 사람과 문화 요리법은 완전히 고립돼 있었다. 비교적 작은 나라에서 나타나는 놀랄만치 변화무쌍한 여러 기후대 역시 이탈리아 음식의 다양성에 기여해왔다 강한 바람을 맞는 알프스 발치의 평야 지대에 위치한 피에몬테주의 주도 토리노는 겨울이 덴마크 코펜하겐보다 혹독하지만 이탈리아를 통틀어 가장 생동감 있는 요리를 선보인다. 서쪽으로 약 145km만 가면 나오는 해안 지역은 아펜니노산맥의 경사면에 둘러싸여 부드러운 지중해 바람에 흠뻑 적셔지는 리구리아 지역은 피한지라는 말(리구리아의 영어식 표기 리비에라[Riviera]는 추위를 피해 휴양하는 곳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대로 온화한 날씨를 누린다. 화초류가 무성하고, 올리브밭이 광대하며, 목초지마다 향긋한 허브가 자라나 요리에 풍부하게 쓰인다.

    이곳이 페스토의 탄생지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리구리아 해안을 감싸는 아펜니노산맥의 동쪽에는 이탈리아에서 제일가는 미식의 고장 에밀리아-로마냐주가 있다. 주도인 볼로냐는 기념물이나 예술가, 영웅적인 역사가 아닌 음식 이름을 딴 유일한 도시일 것이다. 에밀리아-로마냐주에는 산지와 평지가 거의 균등하게 분포해 있다. 에밀리아로마냐주의 평야는 유달리 비옥한데 물줄기가 바다로 내달리면서 쏟아낸 충적토 덕분이다.

    이탈리아 최고의 밀 생산지로, 볼로냐의 축복받은 수제 파스타가 바로 이 밀로 만들어진다. 마찬가지로 이탈리아 최고의 우유로만든 치즈인 파르미지아노 레자노가 여기서 생산되며, 그 이름은 에밀리아 지역의 도시 파르마와 레조에서 딴 것이다. 치즈를 만들고 남은 유청은 돼지 먹이로 쓰이고, 이 돼지의 넓적다리로 만든 파르마 프로슈토와 고기는 세계에서 알아주는 제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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